A Roman fresco of a weathered stone boundary marker standing on a stone ledge with two tied scrolls leaning against its base

소식 에세이

교실의 주권, 그리고 자율이라는 착각

이 글은 존 선생님이 영어로 쓴 에세이를 한국어로 옮긴 것입니다. 원문 보기(영문) →

미국 엘리트 보딩스쿨들의 담장 안에서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적 독립이라는 외투를 두른 혁명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의 이름난 사립학교 가운데 점점 더 많은 곳이 AP(Advanced Placement) 프로그램을 차근차근 해체해 왔습니다. 이 학교들은 그 결정을 요란하게 알립니다. 교육의 표준화를 원칙에 따라 거부하고, 깊이와 폭, 그리고 학교의 자주성을 택했다고 설명합니다. 이야기는 그럴듯합니다. 오랜 역사와 위상을 지닌 학교라면 외부 시험 기관에 수준을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Phillips Exeter Academy는 1950년대 초, AP 프로그램을 낳은 첫 실험에 참여한 세 학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학교는 이제 AP 과목을 개설하지 않습니다. Andover가 뒤를 따랐습니다. St. Paul’s는 AP 교육과정을 없앴습니다. 대학 진학 준비 학교들의 연합인 인디펜던트 커리큘럼 그룹(Independent Curriculum Group)은 AP 폐지를 핵심 과제로 내세우는데, 회원교의 거의 3분의 1이 보딩스쿨입니다. Deerfield Academy 학생들은 교지에 칼럼을 써서, AP가 선생님들의 창의성을 묶어 두고 자신들의 지적 생활에 짐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대부분의 과목에서는 이 논쟁이 적어도 앞뒤가 맞습니다. AP 라틴어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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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AP 라틴어가 어떤 시험이었고,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AP 라틴어 시험은 AP 프로그램이 생길 때부터 형태를 바꿔 가며 존재해 왔습니다. 오랫동안 이 시험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아이네이스》(Aeneid)를 다루는 AP Latin Vergil, 그리고 카툴루스를 키케로,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가운데 한 작가와 번갈아 짝지어 다루는 AP Latin Literature입니다. 2013년 칼리지보드(College Board)는 이 둘을 하나의 시험으로 통합했습니다. 두 작가를 축으로 하는 AP 라틴어입니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Aeneid)와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Gallic War)입니다. 새로 짜인 시험은 서사시와 산문, 두 전통의 라틴어 원문을 꾸준히 읽어 낼 것을 요구합니다. 시험장에서 처음 보는 글을 번역하는 초견 번역, 특정 구절을 꼼꼼히 분석하는 글쓰기, 그리고 문학 라틴어의 문법과 구문을 확실히 다루는 능력도 요구합니다.

쉬운 시험이 아닙니다. 2024년에 이 시험을 치른 학생은 전 세계에서 약 4,300명뿐이었고, 만점인 5점을 받은 학생은 12퍼센트가 되지 않았습니다. 평균 점수는 5점 만점에 2.77점이었습니다. 고대 세계를 대충 아는 정도로 좋은 점수가 나오는 시험의 통계가 아닙니다. 언어를 제대로 다룰 줄 알아야 하는 시험의 통계입니다.

진정한 지적 주권은 엄격한 기준을 피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기준을 정복하는 데 있습니다.

엘리트 보딩스쿨들이 버리기로 한 시험이 바로 이것입니다. 너무 쉬워서가 아닙니다. 학교 입장에서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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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딩스쿨이 AP 라틴어를 반대하는 논리는 좀처럼 솔직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따져 보는 순간 버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논리는 교육 철학의 언어를 차려입고 나타납니다. 주장은 이렇습니다. 우리 학교에는 자체 고전 교육과정을 설계할 만큼 전문성을 갖춘 교사진이 있다. 어떤 과목을 익히는 데 무엇이 적절한지 칼리지보드가 정한 것에 매일 필요가 없다. 우리 학생들은 키케로, 오비디우스, 리비우스, 타키투스, 카툴루스를 표준화된 교육과정으로는 담을 수 없는 방식으로 만난다. 카이사르와 베르길리우스에 고정된 AP 라틴어 교육과정은 너무 좁다. 우리 수업은 그 너머로 간다.

멋진 이론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객관적인 기준을 없앤다고 더 높이 오르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보다는 편안한 안개가 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국 단위 표준화 시험이라는 외부 기준을 없애면, 철저하게 책임질 필요도 함께 사라집니다. 칼리지보드 교육과정은 정확하고 물러섬 없는 요구를 합니다. 이 구절을 정확히 번역하라. 이 장단단육보격(dactylic hexameter) 한 행을 분석하라. 종속절과 간접화법을 처음 보는 글에서 다룰 줄 안다는 것을 보여라. 이런 요구가 사라지면 "고전 문학 심화 세미나"는 엄격한 언어 훈련에서 문화 감상에 가까운 무언가로 놀랄 만큼 쉽게 옮겨 갑니다. 학생들은 로마 정치사와 현대 수용 이론, 주제별 개관을 영어로 토론하며 몇 주를 보냅니다. 라틴어 구문을 익히고, 복잡한 동사 형태를 분석하고, 정확하고 근거 있는 번역을 해내는 일은 고되지만 꼭 필요합니다. 그 일이 조용히 줄어듭니다. 누군가 그렇게 하자고 정해서가 아닙니다. 외부 출제자에게 답할 필요가 없는 교육과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방향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예의 바른 착각입니다. 이런 수업을 마친 학생은 고대 세계에 관해 말하는 능력은 훌륭하게 갖출 수 있습니다. 베르길리우스가 놓인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정치를 논하고, 카이사르가 자신을 3인칭으로 내세운 방식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네이스》에서 처음 보는 서른다섯 단어를 준비 없이 번역하라고 하면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엄격한 외부 채점 기준에서 풀려난 교육과정은, 칼리지보드의 시험이었다면 드러냈을 깊이에 미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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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딩스쿨들이 AP 라틴어에서 떠나는 진짜 이유는 교육이 아니라 학교 운영에 있습니다.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드러납니다.

첫째는 평판입니다. AP 과목을 요구하는 엘리트 보딩스쿨은 칼리지보드가 확인해 주어야 자기 수준이 증명된다고 은연중에 인정하는 셈입니다. 반면 AP를 넘어섰다고, 자기 교육과정이 어떤 표준화된 기준보다 낫다고 선언한 학교는 외부의 인정이 필요 없는 자리에 스스로를 올려놓습니다. 자신들이 으뜸이라는 전제 위에 브랜드를 쌓아 온 학교로서는 끌리는 일입니다. 문제는 라틴어에서는 역사나 영어와 달리, AP 시험이 문화적 이해를 인정하는 데 주안점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시험이 인정하는 것은 라틴어를 읽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학교 안에서 대신 만들어 내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둘째는 교사의 편의입니다. AP 라틴어에는 구체적인 교육과정상의 요구가 있습니다. 필수 읽기 목록이 있고, 기대하는 문법 수준이 있고, 초견 독해 요구 사항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교사가 무엇을 강조할지, 수업 시간을 어떻게 짤지, 학생이 '준비가 부족하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까지 정해 버립니다. 설계한 사람에게만 답하면 되는 교육과정에는 그런 제약이 없습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를 영어 번역으로 6주 동안 읽고 싶은 교사가 있다고 해 봅시다. 그 자체로는 충분히 정당한 지적 작업입니다. 그 교사는 학교 자체의 "고전 심화 세미나"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AP 시험이 요구했을 실력에 비추어 그 수업을 재 볼 외부 기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셋째 이유는 좀처럼 입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AP 라틴어 결과가 불편한 데이터라는 점입니다. AP 라틴어 시험에서 5점을 받는 사람은 전 세계 응시자 여덟 명 가운데 한 명도 되지 않습니다. 고전학과가 AP 교육과정보다 낫다고 공언해 온 보딩스쿨이 갑자기 이 시험을 요구한다고 해 봅시다. 그 학교는 학생들이 필요한 수준으로 라틴어를 실제로 읽을 수 있는지를 정밀하게 재는 외부의 잣대와 마주하게 됩니다. 더 안전한 길은 시험을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그런 질문은 철학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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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맞서, AP 라틴어 시험을 진지한 중등 라틴어 공부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은 실용적인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철학적인 주장입니다.

AP 라틴어 교육과정은 서로 다른 두 라틴 문학 전통을 대표하는 두 작가를 중심으로 짜여 있습니다. 로마 서사시와 아우구스투스 시대 문학의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 그리고 명료하고 정확한 라틴어 산문의 본보기인 카이사르입니다. 아무렇게나 고른 작가들이 아닙니다. 수백 년 동안 진지한 라틴어 교육을 떠받쳐 온 작가들이고, 르네상스 이후 진지한 라틴어 교육과정의 한가운데 자리해 온 작가들입니다. 이 두 작가를 함께 읽으면, 고급 수준의 라틴어 독해에 필요한 능력 전체를 시험할 수 있습니다. 장단단육보격의 운율 분석, 산문 구문의 장악, 복잡한 종속 구조를 다루는 솜씨, 그리고 각 작가 특유의 어법을 정확히 읽어 근거 있는 번역과 알찬 문학 분석을 해내는 능력입니다.

시험 자체도 재겠다고 밝힌 것을 정확히 재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객관식 부분은 교육과정 지문의 이해와 초견 독해를 제대로, 엄격하게 시험합니다. 서술형 부분에서는 35~40단어 정도의 지문을 번역해야 합니다. 구문을 꾸준히 붙들고 있어야 할 만큼의 길이입니다. 특정 행을 분석하는 에세이도 써야 합니다. 인상에 기댄 영어 문장으로 넘어갈 수 있는 막연한 주제 질문은 없습니다. 라틴어가 지면에 있고, 학생은 그것을 읽거나 읽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많은 보딩스쿨의 자체 교육과정은 AP 라틴어 시험을 대신한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시험은 학생이 라틴어를 실제로 읽을 수 있는지를 묻는, 하나의 통일된 전국 단위 시험입니다. 포트폴리오도 아니고, 한 해 동안 한 과제를 교사가 평가한 점수도 아니고, 세미나 토론 점수도 아닙니다. 블라인드로 치러지고, 비교할 전국 응시자 집단이 있는 독해 시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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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머슨 라틴이 이 시험을 진지하게 대하는 것은 라틴어를 진지하게 대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학생들은 한국의 국제학교, 미국 동부의 보딩스쿨, 캘리포니아의 온라인 고등학교, 서울의 공립 중고등학교에서 옵니다. 다니는 학교도, 앉는 교실도 다르고, 라틴어 교육이 무엇인가를 두고 학교마다 품은 전제도 다릅니다. 이들이 함께 나누는 것은 시험 그 자체, 그리고 그 시험이 지키는 기준입니다.

저희는 교육이 대학 입시를 위한 도구만은 아니라는 고전적 신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베르길리우스를 읽는 학생은 채점 기준표의 압박이 아니라 한 문명의 무게를 느껴야 합니다. 어려운 라틴어와 오래 씨름하며 정신을 빚는 일이 더 깊은 목표이고, 시험이 끝난 뒤에도 남는 목표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규율이 자유의 뼈대라는 것도 압니다. 번역의 정확성은 독창적인 생각이 세워지는 토대입니다. 카이사르의 도미문(핵심 동사를 문장 끝에 두는 긴 문장) 하나를 분석하지 못하는 학생은, 시험이 텍스트와의 만남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할 자격을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그저 텍스트와 만나기를 거절했을 뿐입니다.

학교들은 측정에서 물러나기로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측정은 남습니다. 그리고 그 측정은 실재하는 무언가를 잽니다. 어느 학교의 편의도 봐주지 않는 조건에서, 라틴어를 라틴어로 읽는 능력입니다.

그것이 에머슨 라틴이 지키는 기준입니다. 칼리지보드가 70년 동안 지켜 온 기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보딩스쿨들이 뭐라고 하든, 진지한 중등 라틴어 교육을 평가할 때 마땅히 써야 할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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