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man fresco still life of an open wax tablet with stylus, a partially unrolled scroll, a small dark inkwell, and a laurel sprig arranged on a stone ledge

소식 에세이

엘리트의 정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글은 존 선생님이 영어로 쓴 에세이를 한국어로 옮긴 것입니다. 원문 보기(영문) →

오늘날 우리가 교육을 이야기하는 방식의 한가운데에는 혼동이 하나 있습니다. 정확히 짚어 둘 만한 혼동입니다.

우리는 엘리트라는 말을 '비싸다'는 뜻으로, '들어가기 어렵다'는 뜻으로 씁니다. 건물에 새겨진 이름과 졸업장에 찍힌 이름에서 우러나는 특유의 자신감을 떠올립니다. 한마디로 거래를 뜻하는 셈입니다. 학비를 내고 자격을 받고, 지원서를 내고 합격을 받고, 몇 년을 내주고 어느 기관에 몸담았다는 증명서를 받는 거래입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대부분 동안 엘리트 교육은 거의 정반대를 뜻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엘리트 교육은 누가 들어갈 수 있느냐와는 거의 상관이 없었습니다. 중요했던 것은 그 교육이 배우는 사람을 빚어내기 위해 요구한 엄격함이었습니다. 이 차이는 말장난이 아닙니다. 자격을 갖춘 사람을 만들어 내는 일과, 사람 자체를 빚어내는 일의 차이입니다.

그리스인들이 알았던 것

교육을 실용적 훈련 이상의 것으로 처음 체계적으로 생각한 문명은 고대 그리스였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어떤 직무에 맞게 사람을 준비시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장인 조합과 군사 훈련의 몫이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이 마음을 쓴 것은 arete라고 부른 탁월함의 이상을 향해 한 인간을 온전히 빚어내는 일이었습니다.

이 형성은 사람 전체를 아울렀습니다. 몸과 정신과 성품이 모두 그 대상이었습니다. 오늘날 말하는 커리큘럼과는 달랐습니다. 커리큘럼이라는 말은 본래 전차 경주로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왔습니다. 미리 깔아 둔 정해진 트랙을 끝까지 달린다는 뜻입니다. 그리스인의 교육은 그보다 오래 이어지는 변화에 가까웠습니다. 스스로를 다스리고, 정밀하게 추론하고, 설득력 있게 말하고, 진지한 삶이 요구하는 판단력으로 행동하는 능력을 의도적으로 빚어 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리스인에게 엘리트란 사회적 계층이 아니라 형성의 기준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로마와 humanitas, 그리고 artes liberales

로마인들은 이 이상을 물려받아 라틴어 이름을 붙였습니다. humanitas입니다.

키케로는 변호사이자 집정관, 철학자였습니다. 후대의 학생들이 그의 라틴어를 본받도록 훈련받게 될 만큼 뛰어난 산문가이기도 했습니다. 키케로는 문학과 철학, 수사학과 역사로 인간을 온전히 기르는 일을 humanitas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단지 교육받은 사람의 표지가 아니라 자유인의 조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문명에 그저 떠밀려 가는 사람이 아니라, 문명의 삶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humanitas를 길러 주는 교육 과정은 artes liberales, 곧 자유학예(liberal arts)라고 불렸습니다. liberales는 너그럽다거나 느슨하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liber, 곧 자유인에게 걸맞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구분은 사회적인 것이기 전에 도덕적이고 지적인 것이었습니다. 노예를 규정한 것 가운데 하나는 이성으로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자유인을 규정한 것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교육은 그 능력을 쌓는 수단이었습니다.

Humanitas는 지식 이상의 것, 곧 판단력을 요구했습니다. 생각을 따져 보고, 그것으로 논증을 세우고, 본능 이상의 무언가에 기대어 행동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도구 하나를 요구했습니다.

생각의 도구, 언어

그리스에서도, 로마에서도, 그 뒤를 이은 모든 진지한 교육 전통에서도 humanitas의 중심에는 언어가 있었습니다. 의사소통의 수단에 그치지 않는, 생각 그 자체로서의 언어입니다.

고대의 교육자들은 지금 우리가 대부분 잃어버린 명료함으로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학생이 쓰는 언어의 수준과 그 정신의 수준은 별개의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같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잰 것일 뿐입니다. 정확한 문장을 짓지 못하는 학생은 정확한 생각도 짓지 못합니다. 짜임새 있고 우아하게 쓰고 말하도록 훈련받은 학생은, 짜임새 있고 우아하게 생각하도록 훈련받은 것입니다.

이천 년 뒤 조지 오웰은 종교와는 무관한 전혀 다른 길을 거쳐, 독자적으로 같은 통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엉성한 언어와 엉성한 생각이 서로를 키운다고 했습니다. 문장을 다듬는 작가는 의도하든 않든 생각도 함께 다듬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대인들은 이 점을 굳이 논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당연한 사실이라는 전제 위에 교육 전체를 세웠습니다.

라틴어가 천오백 년 넘게 서양 엘리트 교육의 중심에 있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애틋한 마음에 보존해 온 죽은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생각하는 정신을 빚어내는 까다로운 도구였습니다.

원리: 라틴어는 정신에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가

이 주장은 단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설명이 필요합니다. 라틴어 공부는 다른 과목이 하지 못하는 어떤 일을 정신에 해 주는 것일까요?

답은 언어 자체의 구조에 있습니다.

라틴어는 굴절어입니다. 영어는 주로 어순으로 문법적 의미를 정합니다. 라틴어는 단어의 어미로 의미를 정합니다. 격과 곡용, 활용의 체계가 있어서, 어떤 문장이든 이해하려면 먼저 이것들을 알아보고 분석하고 풀어내야 합니다. 라틴어 문장에서는 주어가 꼭 맨 앞에 오지 않습니다. 동사는 흔히 맨 끝에 옵니다. 그 사이에서 복잡한 문장 구조가 여러 종속절과 분사구, 탈격 구문을 매달아 둔 채 버티고 있기도 합니다. 하나하나가 의미에 보탬이 되지만, 그 의미는 마지막 단어가 제자리에 놓일 때까지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라틴어를 읽는다는 것은 문장마다 끈질긴 분석적 추론을 해내는 일입니다. 학생은 여러 문법적 변수를 한꺼번에 머릿속에 붙들고, 형태에 따라 하나씩 풀고, 전체를 하나의 일관된 의미로 맞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분석적 사고입니다. 모든 텍스트의 모든 행에서 적용하고, 연습하고, 다져 가는 분석적 사고입니다.

키케로가 즐겨 쓴 도미문(periodic sentence), 곧 핵심을 문장 끝에 두는 문장은 이 요구를 한층 더 밀고 나갑니다. 키케로의 도미문은 하나의 생각 단위입니다. 끝에 이를 때까지 온전한 의미를 미루어 두도록 공들여 짜여 있습니다. 쓰는 사람은 말로 옮기기 전에 논증의 설계도를 그려야 하고, 읽는 사람은 논증이 풀릴 때까지 그것을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키케로를 읽으며 훈련받은 학생은 오랜 연습 끝에 그처럼 치밀하게 설계된 논증을 세우는 법을 배웁니다. 시작하기 전에 어디로 갈지 알고, 독자를 데리고 함께 가는 법입니다.

열다섯 세기 동안 교육자들이 라틴어를 진지한 교육의 중심에 둔 것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효과는 언어에만 머물지 않고 사고의 방식과 구조에까지 미쳤습니다. 복잡함을 붙들고도 명료함을 잃지 않는 정신을 기르는 일이었습니다. 진정한 지적 힘이 결국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라틴어처럼 문장 하나하나마다 이런 작업을 요구하는 과목은 드뭅니다. 수학은 더 좁고 추상적인 문제로 분석적 추론을 훈련합니다. 과학은 체계적인 관찰과 추론을 훈련합니다. 라틴어는 구조가 복잡한 굴절어를 날마다 분석하고, 해석하고, 작문하는 연습으로 정신을 훈련합니다. 다른 어떤 과목도 그대로 밟지 않는 길입니다.

역사의 증거

이 증거는 정황 증거가 아닙니다. 건물의 뼈대처럼 구조 자체에 들어 있습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는 라틴어 위에 세워졌습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의 초기 교육과정은 라틴어 교육과정이었습니다. 비범한 수사력과 분석력을 지녔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다른 무엇보다 먼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습니다. 제퍼슨, 해밀턴, 매디슨의 지적 형성은 고전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와 「독립선언문」에 드러나는 정밀하고 오래가는 논증을 세운 능력은 타고난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구체적이고 까다로운 교육의 결과였습니다.

고전 교육은 논증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건국자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까지 빚었습니다. 해밀턴, 매디슨, 제이는 헌법을 옹호하는 글을 발표하면서 자기 이름 대신 로마식 이름 하나를 함께 썼습니다. 푸블리우스(Publius)입니다. 로마 공화정을 세운 사람 가운데 하나인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푸블리콜라에게서 따온 이름입니다. 그의 두 번째 이름은 말 그대로 '민중의 벗'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를 멀리서 동경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가면을 집어 든 것은, 그들에게 로마가 생각하고 논쟁하는 데 쓰는 어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흐름은 한 나라, 한 세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 세대 뒤 런던에서 제임스 밀은 세 살 난 아들에게 그리스어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여덟 살 때 라틴어를 더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십대 초반에 이미 고전 정전의 대부분을 익혔고, 훗날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자유주의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나라도 세기도 달랐지만, 같은 구조에 따로 이른 것입니다.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에이브러햄 링컨은 게티즈버그 연설의 문장을 더 단단하게 다듬고 싶었을 때 두 가지를 공부했습니다. 논리 구조를 위해 유클리드를, 수사적 리듬을 위해 킹 제임스 성경을 읽었습니다. 고전 전통이 늘 의도적으로 제공해 온 바로 그 형성을, 그는 본능적으로 찾아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엘리트의 정신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들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특정한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잃어버린 것, 그리고 남아 있는 것

지금 이 시대의 큰 아이러니는 엘리트라는 말은 간직하면서, 그 말이 가리키던 실질은 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기부금 규모와 순위, 동문 네트워크와 입학 경쟁률을 보고 어떤 학교를 엘리트라고 부릅니다. 그 학교가 받아들인 학생들의 정신에 무엇을 하는지는 거의 묻지 않습니다. 정신을 빚어내는지, 아니면 자격만 붙여 주는지 말입니다.

고대의 교육자들이라면 이런 구분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신을 빚어내지 않는 교육은 그들이 보기에 아예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기껏해야 훈련, 곧 특정한 기능에 맞게 사람을 준비시키는 일이었습니다.

Humanitas는 그 이상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키케로의 연설과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로마 법의 언어인 라틴어는 열다섯 세기 동안 대대로 그 요구를 채우는 도구였습니다.

자녀에게 이것이 뜻하는 것

라틴어를 공부하는 자녀는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와 게티즈버그 연설 뒤에 있던 정신들을 빚어낸 전통 안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우연이나 타고난 특권 덕분이 아닙니다. 생각하고, 추론하고, 읽고, 말하는 능력을 정밀하고 힘 있게 기르는, 의도적이고 까다로운 공부 덕분입니다.

자녀는 문장마다 복잡함을 붙들고 그것을 명료함으로 풀어내는 법을 배웁니다. 오래되고 엄밀한 언어의 구조 속에서, 설득력에 그치지 않고 정밀하기까지 한 논증을 세우도록 훈련받습니다.

역사적으로 이해된 엘리트 교육은 어디를 다녔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었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에머슨 라틴은 그 기준을 지나간 역사로만 여기지 않습니다. 진지한 학생에게 그것은 열다섯 세기 전과 다름없이 지금도 타당한 교육의 이상입니다.

Nusquam est qui ubique est.

어디에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세네카가 젊은 벗에게 쓴 말입니다. 너무 많은 작가를 너무 빨리 읽지 말라고 당부하는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모든 것을 맛보기만 하고, 어느 하나에도 자신이 바뀔 만큼 오래 머물지 않는 일을 경계한 것입니다.

학생이 라틴어에 들이는 세월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넓고 짧게 맛본 과목은 성적표에 한 줄을 남깁니다. 천천히, 어려워질 만큼 오래 파고든 과목은 정신을 남깁니다.

무엇을 빚고 있는지 알고, 잘 빚어 가시기 바랍니다.

에머슨 라틴은 5~12학년 학생에게 엄격한 라틴어 수업을 제공합니다.

새 글이 올라오면 이메일로 알려 드립니다. 이메일은 영어로 보내 드립니다.

구독하기